히포크라테스, 그 위대함에 관하여
지난 19C 이전의 의학은 오늘날과 비교하면 형편 없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2000년 이상 크게 달라진 것이 그다지 없었던 것이죠. 의학의 가장 기본적인 해부학이 16C에 들어서야 비로소 완성이 되었습니다. 19C에 수술을 할 때 손을 씻고 진료를 하자는 조셉 리스트 의사의 주장을 당시의 의사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균이 병을 유발하는 기전 자체를 몰랐고 병리학에 관한 지식(개념)이 전혀 없었던 시기입니다. 더러운 피가 있어 병이 생겼다고 피를 빼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포크라테스를 의학의 아버지라고 추종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스 주류의학은 샤머니즘으로 종교와 의술이 일체가 되었던 고대사회였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발병 원인이 주술적 이유보다 식생활 습관 등 환경적 요인이 질병을 유발한다는 합리적인 사고를 가졌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으며, 비주류적인 대체의학에 속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위대함은 주술과 의학을 분리한 최초의 의학자라는데 있는 것입니다.
히포크라테스 이론은 인체는 흑즙, 황즙, 백즙, 혈액의 4가지로 채워져 있으며 이것이 균형을 이룰 때 건강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이는 땅, 불, 물, 공기와 관련되어 땅에는 흑즙, 불에는 황즙, 물에는 백즙, 그리고 공기에는 혈액이 녹아 있다고 간주했습니다. 이러한 체액 병리학은 19C 이전까지 유럽과 이슬람 의사들이 동조를 했으며 지금까지도 인도에서 우나니(Unani) 의학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나니 의학은 간경화, 간질환, 관절염, 천식, 신경계 등 여러가지 급성과 만성질환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체질 분류는 히포크라테스 뿐만이 아니라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베다에서도 3체질로 나눠서 진료합니다. 20C 초 우리나라의 이제마의 사상요법은 4체질로 분류해서 체질별로 처방을 달리 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자연회복력에 그 바탕을 두고 치료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론에 의하면 스스로 4원소의 균형을 맞추어 병을 낫게 하는데요, 히포크라테스 치료법은 간편하게 자연회복을 따르는 것에 중점을 두고 휴식과 안정을 가장 중요하게 믿고 환자를 치료하였습니다. 환자에게 친절하고 치료법은 부드럽고 위생과 소득은 강조했습니다. 이를테면 깨끗한 물과 와인이 처음으로 상처에 사용되고 마른 치료법을 선호하고 간혹 자극연고가 사용되었습니다. 약물이나 특별한 치료법 사용을 자제하고 수술과 낙태를 금했습니다. 당시에는 인체해부가 금지되고 시체는 대부분 화장 절차를 밟았습니다. 이러한 수동적인 치료법은 상대적으로 성공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골절은 골격을 당겨서 맞추고 당긴 압력을 서서히 줄여서 치료를 했습니다. 이것은 수술하는 것보다 통증도 덜하고 그 결과도 만족스러웠습니다. 환자 임상사례를 근거로 진단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시 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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